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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근만 작성일15-04-14 22:45 조회3,71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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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캔드릭 선교사 이야기

 

루비 라헬 캔드릭(Ruby Rachel kendrik)1883128일 미국 텍사스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미국 캔자스 여자 성경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지원하였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2년을 기다렸다가 19079월 텍사스 남감리회 엡윗 청년회 후원으로 내한하였다.

황해도 개성의 한영학원에서 교사와 개성남부 감리교회에서 주일 학교 교사의 일을 맡았는데, 조선에 온 그녀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을 배우고 선교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조선인들에 대한 그녀의 지극한 사랑으로 교통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08815일 그녀는 급성 맹장염에 걸려 만 25세의 젊은 나이로 미처 선교의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의 선교 사역이었으나 조선인들의 영혼에 대한 사랑과 선교사로서의 희생적인 마음가짐은 남다른 것이었고, 그녀의 죽음에 감동한 20여명의 젊은이들이 그녀를 대신하여 조선 선교를 결심하였다.

그녀는 병으로 치료 받을 때 이러한 글을 남겼다.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열씩, 스물씩, 쉰씩 아침저녁으로 한국으로 나오라고 전해 주세요." 

그녀의 죽음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십 배의 선교의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은 그녀가 죽기 전에 텍사스 웹윗 청년회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는 바로 텍사스 웹윗 청년회의 연합대회 기간 중에 배달되었다.

멀리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 캔드릭을 보내 놓고 기도하던 그들은 이 편지를 읽고 그녀의 뜨거운 선교열정에 감격해 하면서 그녀의 선교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 날 한국으로부터 다시 한 통의 전보가 배달되었고, 그 내용은 캔드릭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함께 모여 있던 웹윗 청년회 회원들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되었는데, 이 슬픈 소식 가운데 오히려 그들의 선교 열정이 더욱 불타올랐다고한다. 때문에 자신들도 친구처럼 이방 땅에 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다 죽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후에 한국감리교회 초대 감독이 된 양주삼 목사는 이 당시 캔드릭을 파송한 같은 남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테네시주 벤더빌트 대학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조국에서 순직한 캔드릭과 고향 텍사스 웹윗청년회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고, 1911<그리스도인 회보>에 편지를 써서 이들의 선교열정을 조국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렸다.

다음은 루비 켄드릭 선교사가 죽기 전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 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오는 어린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서너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뒷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으로 인해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 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190725세의 나이에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1년이 채 안 되어 26세의 나이에 주님께로 돌아간 루비 켄드릭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 Korea should have them all." - Ruby Kendric -

"내게 만약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주겠습니다."

 

댓글목록

정준경님의 댓글

정준경 ( 작성일 )

양화진에서 처음 이 묘비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강대상에 써 놓았지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신 선교사님들을 잊지 않으려고...
선교사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는 뜨인돌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