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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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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준경
작성일
20-12-05 19:24
조회
145회

본문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남 왕국 유다의 왕자 여호람과 결혼을 하면서 유다로 왔습니다. 아달랴는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북쪽에 갔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나서 유다의 왕자들을 모두 진멸했습니다. 그리고 여왕이 되어 유다를 6년간 다스렸습니다. 권력에 눈이 먼 아달랴는 왕자들을 모두 진멸하고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통치하려 했지만, 진짜 왕이 성전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왕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한 여인이 갓난아이와 유모를 몰래 빼내어 구출했습니다. 그 여인은 왕자의 고모 여호세바였습니다. 그렇게 요아스 왕자는 성전에서 고모와 고모부인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돌봄 속에서 양육되었습니다. 요아스 왕자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여호야다는 목숨을 걸고 일어서서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를 왕위에 앉혔습니다.   


요아스 왕은 멘토인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는 경건하고 정의로운 통치자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는 우상숭배자로 변했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요아스에게 회개를 촉구하면서 경고했습니다. 아무리 악한 일을 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자신을 책망하는 스가랴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스가랴는 성전 뜰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요아스는 스가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을 수도 없었고, 왕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고모와 고모부가 자기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한다면 그들의 아들을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스가랴를 죽이던 해에 아람의 군대가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요아스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신하들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영국은 청교도 혁명(1640-1660) 때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명예혁명(1688년) 때는 국왕 제임스 2세를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유혈(流血) 사태가 없었기 때문에 명예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세상 일이 모두 권력자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아달랴와 요아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