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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게 부끄러웠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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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준경
작성일
20-06-13 22:59
조회
144회

본문

얼마 전, 퇴근하려는데 교회로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절도범으로 고소를 했으니 파출소에 오라는 경찰의 전화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파출소에 갔더니 같은 빌라에 사는 분이 CCTV를 보고 저를 고소한 것입니다. 그 주간에 위층 사람들이 이사를 가면서 재활용 쓰레기장에 쓸 만한 물건들을 버리고 가서 제가 교회로 가져왔었습니다. 그때 버려진 큰 화분에 작은 꽃이 심겨져 있었는데, 저는 이사 가시는 분들이 버리고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라서 예쁜 꽃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길가에 옮겨 심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고소를 당한 것입니다.


꽃을 들고 개포 파출소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진술서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진술서를 쓰고 나니 몇몇 서류를 주면서 수서 경찰서로 가라고 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얘기를 했더니 요즘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고소한 사람이 힘들게 할 수도 있으니 억울해도 참고 잘 해결하자고 하셨습니다. 신고한 분이 오셨는데, 처음 보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오자마자 흥분해서 한참동안 저를 비난했습니다. 저는 화분에 주인이 있다고 써놓으셨으면 가져가지 않았을 것이고, 없어진 후에도 다시 갖다놓으라고 하셨으면 가져다놨을 거라고 했습니다. 경찰 아저씨들도 제가 집으로 가져간 것도 아니고, 버리고 간 줄 알았던 꽃을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길가에 옮겨 심었으니까 고소를 취소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5천원을 주고 사다가 거기서 키운 후에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제가 가져갔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다행히 경찰 아저씨들의 긴 설득으로 그분은 고소를 취소하고 가셨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꽃에게 부끄러웠습니다. 법률 만능주의 앞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사라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파출소와 경찰서에 있었던 3시간 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 모른 척 해야 하나? 아니면 여러 사람이 보도록 옮겨 심어야 하나?" 그나저나 저를 고소했던 분을 만나면 좀 화해하고 싶은데, 만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