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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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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준경
작성일
20-05-09 21:44
조회
126회

본문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소천하셨고 외할머니만 살아계셨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께서도 제가 돌이 지나고 한 달 후에 소천하셔서 저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전혀 없습니다. 외할머니는 막내딸이 결혼해서 딸만 셋을 낳다가 네 번째는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기뻐하시며 막내딸네 집으로 오셔서 저를 키워주셨답니다. 외할머니의 생애 마지막 1년을 저를 키우시면서 보내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보면 가끔씩 외할머니가 생각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외할머니가 저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를 말씀하시곤 합니다.


외할머니는 77세에 소천하셨습니다. 당시로서는 장수하신 것입니다. 평소에 건강하시던 외할머니가 소천하시기 3개월 전부터 아프기 시작하셨답니다. 우리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마지막 한 달 전에 고창에 사시는 큰 이모네 집으로 가셨답니다. 어머니는 저를 업고 외할머니를 찾아뵙곤 하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아들과 손자들을 뵙고 싶어 하시는데, 외삼촌네 가족이 병문안을 안 오셔서 어머니가 외삼촌네 집으로 가신 날 외할머니가 소천하셨습니다. 외할머니가 소천하셨다는 전보를 받고 아버지는 바로 고창으로 가셨고, 어머니는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야 메모를 보고 고창으로 출발하셨답니다. 저를 업고 한 시간을 걸어서 기차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정읍역에 내렸는데 고창으로 가는 막차가 끝났답니다. 택시비도 없고, 여관비도 없어서 기차역 앞에서 과일을 파시는 할머니에게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할머니의 판잣집으로 데려가서 재워주셨답니다. 그날 밤 제가 할머니네 사과를 하나 먹었다는데 기억에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고창에 갔더니 장례식이 다 끝나서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셨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외삼촌네 가족들을 만나시면 혼을 내십니다.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지, 죽은 뒤에 제사상 잘 차려놓으면 뭐하냐... 어머니가 너희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다가 죽으셨는데...” 5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리신 것 같습니다. 살아계실 때 효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