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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갈 길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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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준경
작성일
20-02-08 20:17
조회
1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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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폴린‧기쁨‧은총 선교사님 가정의 파송식을 앞두고 찬송가 한 곡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불렀던 찬송인데, 찬송가에는 배위량 부인(A. A. Baird)이 작사를 하셨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께서 작사하신 곡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늘 부르던 찬송인데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요즘 찬송가 375장을 부르면서 피터‧폴린 선교사님의 가정을 위해 눈시울을 적셔가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북장로교 출신 배위량(William M. Baird 1862-1931) 선교사님의 아내이신 안애리(Annie A. Baird 1864-1916) 선교사님은 1891년 27세의 나이로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배위량 선교사님 가정은 대구 지역 최초의 선교사님입니다. 당시에는 개항장을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배위량 선교사님은 1893년 4월 17일 경상도 북부 내륙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결행했습니다. 조랑말을 타고 밀양, 청도, 대구 등을 다니면서 전도하며 정탐하신 후 1896년 1월 아내와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대구로 옮기셨습니다. 아들 보다 먼저 부산에서 태어난 낸시라는 딸이 있었는데, 두 살 때 뇌수막염으로 죽었습니다. 딸을 잃고 안애리 선교사님이 지은 찬송이 387장입니다. “멀리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왕후(민비)가 살해되고, 국왕(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며(아관파천), 동학 혁명이 일어났던 때였습니다. 조선의 상황이 칠흑 같이 어두웠던 시기였습니다. 이후 배위량 선교사님의 가정은 서울과 평양에서 사역하시면서 많은 열매들을 맺었습니다. 숭실학당(숭실대학교)을 세우신 분도 배위량 선교사님입니다. 


안애리 선교사님은 많은 영어 찬송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셨습니다. 생명조차 불확실한 캄캄한 상황에서 선교사님이 부르시던 찬송들입니다.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